인물 대한민국에서 후원자로 산다는 것 - 황보관현 후원자

2016.11.07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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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후원자로 살아가는

가장 보통의 그러나 가장 특별한 그들의 이야기





바다에 값 매기는 구룡포 35번 중매인 ‘황보관현’입니다.

올해로 37년째 일하고 있어요.


텔레비전에서 새벽 수산시장 풍경 본 적 있지요? 동도 채 트기 전 새벽, 갓 잡아 올린 물고기를 바닥 가득 깔아두고 알 수 없는 수신호를 주고받는 경매인과 중매인을 보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거예요.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거지요.



37년을 새벽 4시에 일어나요. 이젠 습관이 돼서 전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면 일어나요. 좋은 값에 좋은 고기를 사야 나를 기다리는 도매상, 소매상들이 실망 않거든요. 잠들기 전까지 다음날 새벽 수매를 위해 열 가지도 넘는 밑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막상 가보면 수 없이 생각한 것들이 하나 소용없을 때가 더 많아요, 남들이 보기엔 마냥 활기차고 재미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곳이 삶의 터전이 우리들에게는 총칼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거든요, 거기가.



지금에 와서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 젊었을 땐 참 고생 많이 했어요. 처음 이 일 배울 땐, 시집살이도 그런 시집살이가 없었어요. 아주 혹독하게 배웠어요. 집에서 거울 보면서 혼자 연습 하고, 경매인과 중매인들의 스타일과 표정도 분석하고 말예요. 혼나지 않으려고, 배운 것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려고 참 열심히도 살았지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들이 늘면서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새 뒤돌아보니 아이도 다 컸고, 나도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네요.



우리 마을의 아이는 우리가 지키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중매일 말고 요즘 제가 열을 올리는 일은 ‘구룡포 아동복지위원회’ 일이에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지요? 정말로 그래요. 특히 우리 구룡포는 더 하지요.


구룡포 하면 과메기가 유명한 것 잘 알지요? 추운 겨울이 되면 온 어른이 과메기 작업에 매달려요. 그러다 보면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시골 마을이라 음주나 흡연에 대해 관대한 편이에요.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에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잖아요. 이렇게 우리 구룡포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일들을 해결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구룡포 어른들이 직접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어쩌면 당연한, 우리 마을 아이를 우리가 지키는 일에 그동안 소홀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에서 출발했지요.


‘초록우산 구룡포마을’이 하는 일이 어렵게 말하면 ‘지역사회개발’ 이고 쉽게 말하면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 거든요. 우리 ‘구룡포 아동복지위원회’는 ‘초록우산 구룡포마을’과 함께 지역의 어른들이 모여 우리 지역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인 셈이지요.


처음에는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던 주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 위원회에 첫 번째로 소식이 들어와요. 최근에 한 아이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방임되는 일이 있었는데, 읍사무소에서 우리에게 같이 해결하자고 연락이 왔을 정도니까요. 이제 우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물이 촘촘하면 빠져나가는 고기가 없거든요. 그렇듯이 우리 아동복지위원회와 초록우산과 지역주민들이 그런 그물이 돼서 아이들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



소도 키우고 대게 파티도 해요. 아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건 알아요?


아동복지워원회 일을 하는 데 돈이 들잖아요? 우리 뜻에 동의하는 좋은 분들이 많이 동참해주셔서 후원해주시지만 그래도 부족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씩 돈을 모아 송아지 두 마리를 샀어요. 우리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데 자금을 마련해볼 요량으로요. 지금은 두 마리 모두 큰 어미 소가 되었지요. 새끼도 세 마리나 팔아 자금을 마련했고요. 마을 아이들도 와서 돕곤 해요. 냄새 난다고 투정부릴 때도 있지만 재미가 있나 봐요. 계속 와서 들여다 보는 걸 보면요.


과메기 얘기 했지요? 우리 구룡포는 과메기 말고도 대게, 오징어도 유명해요. 다른 지역에 밀려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사실은 우리 구룡포 대게와 오징어가 최고예요. 아이고, 내가 또 동네 자랑이네요. 입면 열면 이래요. 여하튼, 흔한 것이 대게지만 막상 아이들은 대게를 잘 못 먹어요. 팔기 바쁘지 내 아이들 먹일 여력이 없고, 사 먹으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같이 6년 째 대게파티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하루라도 실컷 대게를 먹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그걸 본 또 다른 마을 분들이 이제는 오징어 파티도 열어준다니까요? 이렇게 하나씩 아이들 좋아하는 일, 아이들 위하는 일 하고 있어요. 마을 어른들이 점점 아이들을 먼저 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뿌듯해요.



아참, 우리 아이들 작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것은 알아요? ‘초록우산 구룡포마을’이 2011년 개소할 당시, 마을 아동 250명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어 했던 것이 ‘문화 활동’ 그 중에도 음악이었어요. 선생님도 없고, 악기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 여기 직원들이 참 고생했지요. 아이들의 열의와 직원들의 열정으로 필요한 것 하나씩 마련한 오케스트라가 지금은 단원 50여 명의 지역명물이에요. 지난 가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게 되었을 땐, 온 마을에 플랜카드가 내 걸리고 동네잔치 분위기였어요. 그때 아이들 눈에서 본 뿌듯함, 자신감 같은 것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막연했던 마음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제 성이 특이하지요? ‘황보’ 성씨를 가진 사람이 국내에 9천 명 정도밖엔 없어요.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었어요. 조선 시대 때 세력 다툼에 패해 황보 성씨 3대를 멸하라는 어명이 내려졌거든요. 그때 모두 죽임을 당했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일하던 노비 한 분이 아기였던 우리 할아버지를 안고 서울서 이곳 구룡포 까지 도망을 온 거에요. 동네 젖동냥으로 큰 할아버지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 항상 남들에게 감사하며 사셨어요. 명절 때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언제나 ‘남들 돕고 살아라. 우리도 다른 사람들 덕에 이렇게 산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죠. 그 때는 그 훈계가 길기도 하고 지겨웠는데, 제가 지금 이렇게 아이들 위한 일 하는 것도 할아버지 영향이 컸지 싶어요.



일하느라 다른 바닷가 마을도 많이 가봤지만, 구룡포 만큼 살기 좋은 곳 못 봤거든요. 다니다보니 오히려 애향심이 생긴 거지요. 내가 사랑하는 내 고향 구룡포의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었으면 싶은데, 마음만 있고 막연했어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만난 것은 큰 복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한 사전 준비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재단 덕분이지요.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아요. 어린이재단과 같이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큰 복 받았다 싶어요. 
 


힘닿는 데 까지 해보자고 혼자 다짐해요.


어린이재단 후원자가 되고, 또 구룡포아동복지위원회를 운영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막연했던 일들이 이제 조금씩 구체화되고 진전되는 느낌이에요. 지난날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하지요. 우리 구룡포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갈 앞으로가 참 기대 돼요.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힘닿는데 까지 해보자고 늘 혼자 다짐해요.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신 김우수 후원자를 제 후원의 롤모델로 삼고 있지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 생의 마지막까지 아이들 위한 나눔을 놓지 않았던 그 분을 생각하면 반성도, 또 더 잘하자는 다짐도 하게 돼요.


제게 대한민국에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로 사는 것은 ‘구룡포의 아이들을 위해, 또 다른 김우수 후원자가 되는 것’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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