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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소식 에볼라(Ebola) 위기, 그 이후

등록일2017.09.29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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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해외사업2본부 콘텐츠개발팀 신유나 팀장




여러분, 3년 전 발생한 에볼라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작은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연일 보도되는 뉴스에 집중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우리는 혹시 모를 바이러스 확산의 위험에 두려워하면서도 먼 나라의 아동들과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가갈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어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에볼라 사태라는 큰 재앙은 우리가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도 연결되어 있음을 절실히 체득하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홍수와 산사태로 시에라리온은 다시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절망하였고 반복되는 비극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질병과 자연재해로 인해 아동들은 죽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나눌 인터뷰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이 희망을 써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의 이야기 입니다. 에볼라와 같이 지독한 질병에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 하나로 희망을 써내려 간 국제어린이재단연맹 시에라리온의 무스타파 케베(Mustapha Kebbeh)씨의 이야기를 통해 후원자님의 후원과 관심이 어떻게 한 아동의 희망으로 변하는지 조금이나마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무스타파 케베 Musthapa Kebbeh (국제어린이재단연맹 시에라리온 사무소 프로그램 본부장)


콘텐츠개발팀(이하 콘)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앞서 한국의 후원자님들에게 간단한 인사 및 소개를 부탁합니다.


Musthapa (이하 M)

안녕하세요. 한국 후원자 여러분. 저는 무스타파 케베 (Musthapa Kebbeh)입니다. 국제어린이재단연맹 시에라리온에서 사업본부장 (Program Director)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제어린이재단연맹 감비아에서 근무하였고 에볼라사태 발생 후 2015년도부터 에볼라 긴급구호 대응반에서 일하였습니다. 이후 시에라리온에서 지속적으로 재건복구사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당시 에볼라 사태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몇 년이 지난 사태라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M

좋습니다. 당시 상황 설명에 앞서 여기서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에볼라 사태'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한 국제 보건 비상 사태 중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사건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시에 에볼라라는 질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해당 국가 및 국제사회의 보건시스템은 신종 바이러스를 대응하기에 턱없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에볼라 이전에 우리는 국제보건시스템과 대응 체계가 구축이 되어있다고 생각하였죠. 그러나 막상 상황이 발생하니 우리의 보건시스템과 대응체계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엔 턱없이 부실했음을 우리 모두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이 알고 계시듯이 에볼라 바이러스는 신체 접촉으로 인해 주로 감염됩니다. 서아프리카 지역 문화를 살펴보면 악수하거나 가벼운 포옹이 인사와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더군다나 지역 공동체의 유대가 강한 지역이라 이웃간 친척간 모여 살면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 삶의 큰 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그 삶의 일부분이 가장 치명적인 질병의 전염경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황하였고 질병을 더욱 빠르게 전파되어 갔죠.


에볼라 관련 슬로건 앞을 지나는 아동 모습 (출처: NationalTruk)


또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매우 희귀하고 생소하여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에볼라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루머와 불신들이 만연하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공중보건체계를 불신하기 시작하고 토속신앙이나 미신에 의존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볼라 증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라리아나 콜레라의 증상과 비슷하여 에볼라 사태의 초기 파악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에볼라 사태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재앙이 되어버렸습니다.


에볼라에 감염된 사람, 그를 도와주기를 원했던 선량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이웃들이 점차 목숨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약 8,000명의 아동들이 고아가 되거나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한 마을에는 에볼라로 인해 가족 전체가 사망하여 8세 여아 혼자 살아남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동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앞에 놓여진 삶은 어려움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지금 시에라리온에는 에볼라가 할퀴고 간 많은 상처 중 고아아동, 여아청소년 임신, 빈곤 등 아동들의 몫으로 남겨진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내 슬럼가 전경


이렇게 말로만 들어도 당시의 절박한 상황인 느껴집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동들, 무성한 루머들... 모든 긴급구호 현장 모두 쉽지는 않지만, 특히 이 에볼라 사태는 더욱 대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시 국제어린이재단연맹의 현장대응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M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이 도전이었고 생존의 갈림길에 있어야 했습니다. 앞에 말씀 드렸다시피 초반 국제대응시스템 부족 및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해 국제어린이재단연맹 역시 많은 혼란 속에 대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연맹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현장대응을 위해 모든 연맹파트너(한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등) 기금을 모아 대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직적인 협력은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업무를 신속하게 수행하고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신속한 조사를 통해 재단은 관찰-케어센터(Observatory Interim Care Center)를 설치하여 에볼라 감염자가 있는 가정과 지역사회의 아동들이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에볼라 피해 가정 또는 지역의 아동들은 보호자도 없이 며칠을 굶은 채로 주변의 선입견과 오해로 인해 방치된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도 아동 근처에 가고 싶어하지도 않고 적절한 음식과 물을 주고 싶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실제로 우리는 에볼라가 아닌 혼자 남겨져서 굶어 죽어 가는 아동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재단은 이러한 아동들을 위한 지원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아동들이 센터에 안전하게 들어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부, 유니세프, 지역사회와 공조하여 센터를 운영하고 지원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센터는 크게 3개의 블록으로 나뉩니다. 제 1 블록은 처음 센터엔 온 아동들이 건강체크 및 안전 기간 동안 격리되어 있는 단계입니다. 제 2 블록은 아동들이 충격에 벗어날 수 있도록 심리치료와 영양공급을 제공하여 회복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제 3 블록에서는 아동들이 가정과 지역으로 돌아갔을 때 안전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가정과 지역센터를 교육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들로 이루어집니다. 즉, 감염의 예방과 피해 가정 아동을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주 대응 전략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예방은 최선의 대응이었고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당시 모두의 목표였지요. 특히, 재단은 아동을 중심으로 대응을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네요. 이러한 대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M

에볼라 사태는 모두에게 위협적이고 모두에게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직원들이 이러한 사태에 준비되고 탈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우리 직원들 역시 에볼라가 창궐한 나라에 살면서 동시에 에볼라에 대응하여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집에 두고 매일같이 현장으로 나가 에볼라라는 바이러스와 싸워야 했습니다. 대응 초기에서는 정부관계자, NGO 수행자들 등등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고 아무도 병원에 가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재단은 교육과 신속한 상황 전달을 통해 직원들이 에볼라 사태에 대해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우리가 활동해야 하만 하는 필요성과 절박성에 대해 직원들과 깊은 공감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원들의 가족들 역시 지원활동에 대해 이해하고 지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시스템이 자리잡아가면서 시에라리온 정부를 중심으로 많은 재단과 같은 단체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응초기 대혼란과 두려움 속에 걱정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나온 직원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마음이 아픕니다. 이러한 헌신과 희생으로 에볼라 사태가 빠르게 진압되어 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국제사회는 에볼라 사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무스타파씨는 지난 쓰린 에볼라 사태를 통해 어떤 교훈과 배움을 얻으셨는지요?


M

가장 큰 배움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의사소통 구조를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빠른 의사소통과 결정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지요. 이후 우리는 지역마다 체계를 수립하고 각기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습니다. 지역별 대응 및 정보는 취합되어 국가사무소로 전달되고 이는 곳 전 세계에 있는 국제어린이재단연맹으로 빠르게 전달됩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에볼라 사태라는 큰 실수를 통해 시에라리온의 공중보건시스템과 아동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였고 공론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시스템과 정책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옹호활동을 수행하였고 정부는 아동보호를 위한 정책과 지원을 이어가는 것으로 입장을 수립하였습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갭(gap)을 느낍니다. 현장에는 우리의 지원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여전히 에볼라 피해아동과 가정은 고통 속에 있습니다. 에볼라 사태가 종결되었지만요. 아직 우리가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현장에 와서 아동을 만나니 그 어려움과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M

네, 맞습니다. 에볼라 사태 이후 시에라리온에는 에볼라로 부모와 가족을 잃은 에볼라 고아들이 생겨났습니다. 아동들은 한 순간을 부모와 가족들을 잃게 되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게 지원되어야 할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자립지원입니다. 에볼라 피해 가정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가정들은 에볼라 사태 동안 농사지을 씨앗을 다 먹어버려 농사를 지을 수도 음식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동들은 하루 종일 굶은 채로 10 km를 걸어 학교에 가야 합니다. 아동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장작을 줍거나 열매를 주워서 팔기 시작합니다. 13살짜리 아동이 집안의 가장이 되어 8살짜리 동생을 먹일 음식을 하루 종일 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는 아동보호입니다. 지역기반 아동보호 메커니즘을 수립하여 에볼라 피해 아동들이 더 이상 에볼라로 인한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입어서는 안됩니다. 아동들이 안전하게 지역사회와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아들의 조기임신 문제에 대한 지원입니다. 에볼라 사태 시 시에라리온의 모든 공립학교가 약 6개월간 휴교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아동들이 일을 하거나 부모의 방임으로 인해 길거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 없이 방치된 여아들이 무책임한 어른들로 인해 강제 임신, 조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시에라리온에는 에볼라 사태로 인해 수많은 여아들이 조기 임신과 출산을 하였습니다. 여아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혼자 갓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제어린이연맹 시에라리온 사무소는 이러한 이슈에 놓인 아동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에볼라 사태가 종결된 이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에라리온은 잊혀져 가고 있어 지원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많은 않은 상황입니다.


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아이들 모습


에볼라 사태로 인해 여아들이 이러한 방임과 어려움에 놓여있다는 이야기를 조금 의외이면서 동시에 마음이 아픕니다. 또 아동들이 부모님을 잃은 채 어린 동생과 지내야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후원자님들에게 관련하여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 드립니다.


M

에볼라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한국의 후원자님들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그 도움으로 인해 에볼라 사태가 종결되고 많은 수의 아동들이 에볼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 학교가 아닌 노동의 현장에 있는 아이들, 조기임신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무고한 여아들... 너무나 많은 아동들이 여러분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후원자님들과 더 뜻 깊고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 하였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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