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대한민국에서 후원자로 산다는 것 - 수인 후원자

2016.11.082,580

텍스트 축소 버튼텍스트 확대 버튼



대한민국에서 후원자로 살아가는

가장 보통의 그러나 가장 특별한 그들의 이야기





‘테이블도 의자도 손수 만들어주신 분이에요.’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의 미소 천사 서혜영 대리의 말 덕에 순박한 목수의 얼굴을 그리며 도착한 기장의 한 마을. 나지막한 산이 포옥 감싸고 있는, 다리가 유달리 긴 흰 진돗개가 있고 마른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린 감이 그림 같은 수인 후원자의 작업실.


순박한 목수? 알고 보니 말 그대로 ‘놀랄 노자’ 스펙의 못 하는 것 빼곤 다 하는 유명 화백! 정겨운 시골? 서울서도 맛보기 힘든 향긋한 커피와 부드러운 크림이 맛있는 케이크 대접은 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하지만 ‘사람과 나눔’이라는 명확한 인생철학을 가진 후원자, ‘수인 화백’을 만나본다.
 


"뭐 딱히 소개할 건 없는데, 아 제자들이 나더러 '사기 캐릭터'라고 하더군요"
 
보는 것처럼 그림 그리고 나무도 깎고 그래요. 나이는 얼마나 돼 보여요 그래? 어느새 예순 해 하고도 몇 해가 더 흘렀네요.



"제가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저는 화백님의 제자인 서른두 살 양지훈입니다. 작가와 아트 디렉터이고요. 선생님은 국내 제일이라는 대학에서 또 여러 외국에서 그림을 공부하신 분이에요. 바구니에 들어있는 저 감 그림 보이시죠? 선생님께서 열일곱 살 때 그리신 겁니다. 이 으르렁 소리가 들릴 듯 한 호랑이 그림은 선생님께서 제 나이 때 그리신 거고요. 한국화, 서양화, 수채화, 유화 가리지 않으시죠. 장르 불문이 화백님의 장르입니다. 수상 경력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죠. 국전 모든 분야에서 수상하신 분이니까요.


저를 비롯해 우리 선생님을 그림 뿐 아니라 인생의 멘토로 섬기는 제자들이 많아요. 우리는 선생님을 ‘사기 캐릭터’라고 부릅니다. 그림뿐 아니라 정말 못하는 게 없으세요. 현실에선 도저히 존재하기 힘든 캐릭터죠.



"두 개 중 하나는 나누자고 생각해요. 나눌 수 있고 나누고 싶은 이들을 만나 참 좋아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만난 지 벌써 여덟 해가 지났네요. 어떤 젊은 여자분이 전화를 했더라고요. 옷가게에 갔다가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 전화했다면서. 그게 내가 꾸민 우리 안사람 가게였지. 전화 건 분은 당시 부산복지관의 김춘희 팀장이에요. 지금 부산교육센터를 맡고 계시지. 대뜸 그러더라고요. 복지관의 콧구멍만 한 모퉁이 공사를 좀 부탁한다고. 아, 뻔뻔하게 덧붙이더군, 돈이 없다고 말이에요.
 
그때쯤 성당 공사를 하고 있었어요. 부탁받아 커다란 예수상도 조각했어요. 돈도 많이 준다더군요. 그런데 그걸 하면서 ‘아, 이건 내 일이 아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싶었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아이꿈터



내가 이래봬도 아이들을 참 좋아해요. 외모와 나이 탓에 아이들과 직접 놀아 줄 순 없으니 복지관 공사로라도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자 싶어 돈도 안 되는 공사를 덜컥 맡아 진행했죠 뭐. 그런데 또 공사를 해놓고 보니 나머지 공간들이 허전하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예쁜 그림들을 선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내 그림뿐 아니라 우리 제자들 그림까지 선물할 수 있어 기분이 더 좋죠. 아이들, 주민들이 그림을 보고 기뻐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니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주었다기보다 얻었다고 생각해요. 웃음을 얻고, 사람과 관계도 얻었고요."


HAPPINISM, oil on canvas, 2012 양지훈


내가 가진 재주로 복지관이 예뻐지니까 첫째 직원들 웃음이 늘었대요. 직원들이 웃으니까 직원들을 만나는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도 또 웃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도 덩달아 또 웃고. 그 웃음이 나에게 또 돌아오더라니까요. 물질로 돕는 것도 물론 훌륭한 일이지요. 그런데,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돕고, 그것이 큰 웃음으로 온전히 내게 돌아오니 이보다 좋은 일이 무엇이 있겠나 싶어요.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기쁨, 부모님께 뭔가 해드렸을 때의 그 기분을 이제는 직원들 또 아이들과 함께 할 때 똑같이 느껴요. 이제 모두 가족 같은 거죠.


지난 팔 년 동안 참 많이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했어요. 내 나이 들고 보니 여기저기 고장이 나거든요. 나 아플 땐 우리 직원들이 마음으로 울어주는 게 느껴져 참 고맙죠. 또 경사가 있을 땐 모두 함께 웃고 기뻐하고 말예요. 직원들 결혼 땐 내가 그림도 선물하고. 사람과 관계 이건 정말 돈 주고도 못 사는 거잖아요? 내가 주었다고들 하지만 다 내가 얻었죠.
 

(왼쪽) 노인, oil on canvas, 2014, 안정명 / (오른쪽) Instinctive landscape, oil on canvas, 2013, 양지훈



"올해는 1,200포긴데, 내년엔 3,000포기 정도는 해야겠죠?"
 
들어오면서 배추밭 봤죠? 저 예쁜 것들은 곧 복지관 식당의 김치가 될 운명이에요. 몇 해 전부터 내 손으로 직접 길러 복지관에 후원하고 있죠. 농사는 거짓말을 안 해요. 내가 들인 시간, 공, 사랑만큼 딱 그만큼 돌아오는 게 농사거든요.
 
“올해는 1,200포긴데 내년엔 3,000포기는 심어야지 싶어요. 우리 지훈이도 거들거니 거뜬하지.”
“......네, 선생님“ (양지훈 작가는 그 후로 말이 없었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하기 힘들겠지. 그런데 이게 아이들, 주민들에게 작으나마 선물이 된다고 생각하면 신나서 하게 돼요. 내 몫은 없죠. 화가랍시고 뒷짐 지고 다니면 동네 인심 못 얻어요. 내 몫은 이 동네에서 사다 먹어요. 그래야 다 같이 잘 살죠.
 


"즐거움이죠.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그저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
 
대한민국에서 후원자로 산다는 것, 내게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그저 ‘즐거움’ 그 자체죠. 내가 혼자 그리고 나 혼자 보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거든요. 나눔도 아니,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죠.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나도 어린 시절 그림 한다고 집에서 쫓겨나고 참 고생도 많이 했거든요. 그때 내가 도장 파는 재주가 있어 그런 허드렛일 해드리며 선생님들에게 공짜로 많이도 배웠어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니까 다 나에게 되돌아 오는구나‘를 늘 느끼며 살았죠.
 
이쯤 살고 보니 다른 욕심은 없고, 그저 내 제자들도 많이 나누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요. 나한테서 배우는 것이 그림만이 아니었으면 싶어요. 그러려면 내가 더 많이 낮추고 살아야겠지요.



:: 취재후기 ::


“오늘 담은 건데, 사나흘 지나면 먹을 만은 할 거야.” 직접 기른 오이로 만드셨다며 오는 길에 싸주신 오이 피클. 집에 와 옮겨 담다가 사나흘을 못 기다려 하나 집어먹었습니다. 새콤달콤 향긋하니 지금도 맛 좋고, 며칠 후면 더 맛있겠습니다. 문득 화백님처럼 맛이 들고 멋이 들 제자들과 함께 할 앞으로가 참 기대된다 싶습니다. 더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함께 해 주세요. 화백님 본받아 더 많이 나누고 살게요. 참, 고맙습니다.
 

챗봇 후원하기 후원하기 챗봇 닫기
최상단으로